이관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자연신들이 함께하는 마을신앙
우리는 근래 각종 영상물을 통해 지구촌 곳곳에 살고 있는 여러 종족들의 삶의 모습을 자주 접하곤 한다. 특히 오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은 우리에게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입고 먹고 거주하는 풍습에서부터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거치는 각종 의례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이러한 원주민들의 다양한 풍습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연인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아직도 그들의 삶 속에서 인위적인 요소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여러 생활 모습 중 아주 실감 있게 와 닿는 것은 바로 그들의 자연에 기초한 신앙생활이다. 이와 같이 자연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영속시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자연에 기초하여 성립된 우리의 민속 신앙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집단적인 종교 행위는 개인을 물론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지주로서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집단의 종교 지도자로서 또는 정치 지도자로서 절대적인 지위와 힘을 행사하면서도 항상 그 집단의 공동 이익과 공동체 생활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에 기초하여 민주적인 방법에 의해 공동의 안녕과 이익을 갈구하는 이들 자연 종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지금껏 우리 곁에서 그 몫을 다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보다도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즉 기독교나 불교와 같이 교리와 체계가 확립되어 세계 종교화된 종교단체가 있는가 하면 아직 교리나 체계가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와 체계 속에서 소박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한다.
우리 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아니 우리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어느 민족 어느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종교적 습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래종교가 들어왔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배척되거나 마찰을 빚은 적이 없다. 오히려 기존의 우리 토착 신앙과 조화롭게 습함함으로서 이 땅에 어울리는 새로운 신흥 종교를 탄생시킨다. 따라서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를 종교 박물관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는 신들림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고도 한다. 어떠한 외래 종교가 들어오더라도 우리 실정에 맞게 토착화하는 종교적인 힘이 우리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천 년 동안 우리 토양에서 자연 발생하여 조상 대대로 신앙되어 온 마을 공동체 신앙은 이러한 우리의 종교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는 온갖 자연신들이 모두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도교와 유교, 그리고 불교적인 요소가 함께 존재한다. 특히 우리 사회의 기초 단위인 마을을 단위로 하여 대동의 한마음으로 펼쳐지는 종교 의례이기 때문에 공동체적인 삶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한 지역의 마을 공동체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보다 중요한 문화 복합체로 대개 마을 공동체 신앙을 들먹인다. 마을 공동체 신앙은 인간 생활의 가장 절실하고 기본적인 욕구를 반영할 뿐 아니라, 전통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기초 단위인 동시에 경제적 생산과 종교적 성소의 기초 단위도 되기 때문이다. 마을 공동체 신앙은 계시, 교리, 교조에 의한 인위적인 종교와는 달리 원초부터 인간 본연의 종교 욕구에서 자연 발생한 자연 종교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보다도 오랜 역사성을 지니며 대다수 민중의 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아울러 마을 사회에 통합과 일체감을 주며, 혈연적인 종파 성이 앞서는 한국적 사회구조를 지연적인 화합과 질서 속에 융합시키는 촉매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마을 공동체 신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종교적 제의로서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또한 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우리의 전통 생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 공동체 신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치관 정립에 도움을 줄 것이고,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하여 조그마한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마을 지킴이
마을 공동체 신앙이란 마을 전체 및 개인(가정포함)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신앙으로, 마을 전체와 관계 있는 제의 장소에서 마을 신에게 정기적으로 올려지는 마을 공동 제의를 일컫는다. 즉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제, 마을 제 또는 집단신앙을 통칭하는 것으로, 산신당을 위시하여 장승, 솟대, 탑, 선돌, 서낭당, 당수나무, 미륵 등의 마을 공동체 신앙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라 하겠다. 이러한 신앙 대상물들은 대체로 마을 뒷산 중턱에 산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마을 입구에는 서낭당, 장승, 솟대, 탑, 선돌, 당수나무 등이 단독으로 또는 두세 가지씩 복합적으로 세워져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동서남북에 적절한 마을 신을 정주시킴으로써 마을을 수호하게 하거나, 풍수상 마을의 지형에 따라 어떠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정주 공간을 질서와 안정의 세계로 이끌고자 하였다. 아무튼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마을 지킴이로서의 여러 신앙 대상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마음의 안식처로 삼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이러한 신앙 대상물 중 장승, 돌탑 등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풍요로움과 수호를 담당하는 마을 지킴이로써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온 솟대신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풍요로움과 수호를 담당하는 마을 지킴이 솟대
솟대란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힌 마을의 신앙 대상물로 학술적이 용어이다.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이를 솟대라 부르지 않고 지역에 따라 오리, 짐 대, 돛대, 기러기 대, 화짓대, 화줏대, 배선대, 별선대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진다. 심지어 일부 마을에서는 당간지주를 일컬어 짐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나 솟대신앙 이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서낭대나 영동대, 볏가리대 등과 같이 높은 장대를 세우는 이른바 입간민속이 널리 있어 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솟대는 그 신양 형태나 역할에 있어서 다른 입간 민속들과는 다른 점을 보여준다. 서낭대나 영동대, 그리고 볏가리대 등이 개인적이고 일시적이며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대상물이라고 한다면 솟대는 마을의 항구적인 신간으로서 마을 사람들의 신앙생활과 밀접한 관견을 맺고 있는 신앙대상물인 것이다. 특히 솟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즉 장대나 장대 위에 올려져 있는 새가 갖는 의미는 다른 신앙대상물에서 차장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요소로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민족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다.
우선 긴 장대 위에 올려져 있는 새의 경우 대개 오리나 기러기라고 불리나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 갈매기, 따오기, 까치 등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이 솟대의 새는 철새이자 물새인 오리가 주류를 이루는데 여기에는 많은 종교적 상징성이 깃들어 있다. 가령 철새는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하여 날아갔다가 다시 날아오는 행위를 해마다 반복하는 것이기에 고대인들은 오리를 인간세계와 신령의 세계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신조로 여겼다. 특히 오리는 북쪽으로부터 와서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는 철새이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이를 우순풍조와 연결시켜 생각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후학적으로 비구름이 북쪽으로부터 몰려오면 대부분 비가 내리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북쪽으로부터 날아오는 철새인 오리가 바고 비구름을 몰고 온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오리의 잠수능력은 샤머니즘의 삼층 우주관에 있어서 천상계와 시장 계, 그리고 지하 계를 꿰뚫는 신력에 해당하는 것으로도 인식하였다. 대부분의 새들이 천상계와 지상 계만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반면에 오리는 삼계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오리는 더욱 신성시되어 마을신앙의 신앙대상물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정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예는 시베리아 샤만의 의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 역시 오리가 갖는 종교적 상징성 때문에 굿을 하기 위해서는 오리 모습의 의상을 입는다. 이와 같이 북쪽으로부터 날아오는 철새인 오리의 습성과 삼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오리의 생태, 그리고 오리의 다산성 등이 자연의 섭리와 우연히도 일치하여 오리에게 종교적인 상징성을 부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솟대가 언제부터 농경 마을의 마을 신으로 모셔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단지 농경 문 청동기와 같은 고고 유물과 삼한 사회의 소도에서 긴 장대에 북과 방울을 달았다고 하는 등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솟대신앙은 적어도 청동기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있어서 솟대신앙이 언제부터 마을신앙으로 정착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솟대는 북아시아 솟대와는 달리 농경문화에 적합한 여러 다양한 형태와 기능으로 변모해 가면서 농경 마을의 신앙 체계에 통합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솟대의 장대에 흰 새끼줄이나 묵 선으로 용트림하거나 장대 자체도 용트림처럼 비틀려 꼬인 나무를 베어 내어 솟대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우순풍조를 비는 것 등은 솟대와 농경문화와의 융합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들이다.
이와 같이 철새 류의 물새인 오리가 갖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이 마을의 특수한 사정과 관련된 간절한 희구에 따라서 어떤 하나의 상징성만이 강조되어 솟대의 기능 역시 다양해진 것으로 보인다. 가령 마을에 따라서 오리가 마을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준다든지,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다 준다든지, 홍수를 막아준다든지, 또는 홍수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한다든지, 물새의 상징성 때문에 화마가 얼씬거리지 못한다든지 하는 등의 관념은 오리의 종교적 상징성이 마을에 따라서 얼마나 다양하게 변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들이다. 이 밖에도 새의 모양이나 머리 방향, 마리 수에 따라서도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하여튼 지금은 솟대를 구성하는 두 요소, 곧 장대와 새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는 마을이나 이를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다. 따라서 솟대의 원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채 조상 대대로 모셔오던 신앙대상물로서 계속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단지 고고학이나 문헌 자료, 그리고 구전하는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현재 마을에서 광범위하게 신앙되고 있는 솟대는 그 기원이 청동기시대로 소급될 수 있을 만큼 매우 오랜 역사성을 지니며, 그 분포도 만주, 몽고, 시베리아, 일본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솟대는 북아시아 샤머니즘의 문화권 안에서 우주나무와 물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매우 오랜 역사성을 지닌 신앙 대상물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닌 솟대를 마을 사람들은 음력으로 정월 또는 10월초, 동제 모실 때에 마을의 안녕과 수호 그리고 풍농을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운다. 이 밖에도 전통 사회에서는 행주 형 지세(마을 형국이 배의 형국과 같아 돛대가 없으면 가라앉는다고 하는 지세)의 마을에 돛대를 나타내기 위하여 건립하거나 또는 과거 급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우는 예, 그리고 풍수상 마을 앞산이 화산인 경우 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화재 ark이 솟대 등 마을에 다라 다양한 의미의 솟대를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행주 형 지세의 솟대나 과거급제 기념의 솟대, 그리고 화재 막이 솟대 등도 역시 마을의 재액초복이나 풍농, 그리고 개인의 안녕을 위한 신앙 대상으로 지금껏 모셔지고 있다. 한편 이러한 솟대는 마을 입구에 홀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장승, 선돌, 돌탑, 돌무더기, 당수나무 등과 함께 세워져 마을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각종 재앙을 막는 마을의 하당신으로 또는 상당신이나 주신으로 모셔진다. 곧 솟대가 세워지는 곳은 대체로 마을 입구가 된다. 마을 입구란 마을 안의 신성과 질서의 세계, 마을 밖의 부정을 막으며 마을의 허한 곳(화재 막이 솟대)이나, 마을 중앙(행주 형 솟대), 그리고 급제자의 문 앞이나 선산에도(과거 급제 형 솟대) 세움으로써 여러 기능과 역할을 함께 해왔다. 이와 같이 오늘날 솟대 자체는 독립적인 신앙 대상으로서의 성격이 매우 희미해졌고 대개는 장승 또는 기타 신앙 대상물과 함께 모셔지고 있다. 그 가운데 장승과 솟대가 하나의 짝으로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장승과 솟대가 하는 일을 나누어서 생각하고 모시는 마을 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솟대의 원래 의미가 많이 상실되면서 장승과 결부되어 보호신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솟대는 농경 마을을 사회 구성의 기초 단위로 했던 때부터 마을의 안녕과 수호를 맡고, 농사의 성공을 보장하는 마을신의 하나로 변모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솟대는 풍수지리상과 과거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널리 퍼짐에 다라 행주 형 지세의 돛대로서 세우는 짐 대와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화주대로 분화 발전 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솟대는 마을 신앙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신앙 대상물이지만 그것이 지니는 역사성과 북아시아 솟대 신앙과의 관련성, 전국적인 분포와 농경문화와의 다양한 융합현상, 농경 마을에서의 액막이와 풍 농의 기능, 급제 솟대와 행주형 지세의 솟대 문데, 새(특히 오리와 까마귀)신앙의 의미 등을 고려하면 솟대의 전반적인 성격과 기능을 밝히는 일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민속자료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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